27/07/2026
chapter 113. 잠시 멈춰야할 때
6개월 전, 이스탄불을 경유해 스페인 마드리드에 처음 도착했을 때의 설렘이 아직도 생생하다. 단순한 장기여행이 아니라 해외에서 반년을 살아볼 기회가 생겼다는 사실은 나로 하여금 자연스럽게 두 가지 원대한 목표를 꾸려나가게 만들었다. 우선 한 학기 동안 하엔에 머물며 지구 반대편에 '우리 동네'를 만드는 것. 그리고 학기가 끝난 뒤 귀국까지 남은 두 달 동안은 유럽을 가로지르며 최대한 많은 나라에 내 발자취를 남기는 것 말이다.
첫 번째 목표를 이뤘는가 묻는다면 찰나의 고민도 없이 그렇다고 할 것이다. 살면서 언제 유럽 소도시에서 ‘우리’ 집과 ‘우리’ 학교를 두고 살아보겠는가. 관광객을 위해 24시간 영업 점포가 생겨나고 있는 스페인 대도시과 달리 대부분의 도시가 칼같이 시에스타를 지키는 도시. 스타벅스는커녕 아이스 아메리카노의 개념조차 존재하지 않는 도시. 상상과 현실은 대부분 100% 일치하지 않지만, 관광객보다 현지인의 일상이 먼저 보이는 하엔에서의 반년은 내가 상상했던 유럽 소도시 생활에 온전히 부합했다.
두 번째 목표를 이뤘는가 묻는다면, 아직 조금 남았다고 답해야 할 것이다. 리가에서 출발한 열차는 3시간 30분여를 달려 나를 유럽일주의 마지막 도시 탈린에 내려놓는다. 유럽일주를 하며 보통 한 도시에 이틀, 적으면 하루나 한나절 정도 머물렀지만, 탈린에서는 총 3박을 보낼 예정이다. 빠른 템포로 이어온 유럽일주의 속도를 조금 늦추고, 지난 6개월을 천천히 정리할 시간. 탈린에서 보낼 마지막 3일은 귀국을 준비하는 차분한 시간이 되지 않을까.
다른 유럽 도시들에 비해 물가가 크게 저렴한 발트 3국. 덕분에 빌뉴스와 리가, 탈린에서의 내 숙소는 전부 호스텔이 아닌 호텔이다. 전날 밤 10시가 훌쩍 넘어 이곳에 도착해서일까. 퀸사이즈 침대에 대자로 뻗어 오랜만에 늦잠을 자니, 시간은 오전 11시를 가리키고 있다. 앞서 방문했던 발트 3국의 두 도시에 비해 관광객도, 볼거리도 눈에 띄게 많은 도시가 탈린이지만, 침대 밖으로 빠져나오는 내 속도는 유럽일주 기간 뿐 아니라 하엔에서의 생활을 통틀어서도 가장 느리다.
어제도 흐림, 오늘도 흐림, 내일도 흐림. 마지막으로 맑은 하늘을 본 도시가 체코 체스키크룸로프가 될 줄이야. 아무리 여름에 맑은 날이 몰려 있는 유럽이라지만, 국경을 네 차례 넘는 동안 맑은 날이 단 하루도 없었다는 사실은 여행하는 입장에서 이런 불운이 있을까 싶을 정도이다.
유럽에서 머무는 기간이 180일에 가까워질수록, 컨디션이 떨어져가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일지도 모르겠다. 자고 일어나면 머리맡의 나라가 바뀌곤 하는 빡센 일정이 몇 주째 이어졌으니, 눈에 띄지는 않아도 체력은 조금씩 깎여나가고 있었을 것이다. 여기에 요 며칠동안 흐린 날씨까지 계속 겹치니 원하는 사진을 담지 못할 수도 있겠다는 부담이 은근한 스트레스로 다가온다. 체력적인 문제는 쉬면 낫는다지만, 스트레스의 원인인 날씨는 내가 신이 아닌 이상 바꿀 수 없는 노릇이니 컨디션은 쉽게 올라오지 않는다.
‘슬슬 귀국할 때가 되긴 한 건가’
6개월 전, 출국을 하며 막연하게 가졌던 궁금증 하나가 있었다. 외국에 오랜 기간 나가 있으면 언제쯤 한국으로 돌아가고 싶어질까, 혹은 돌아가고 싶은 마음이 들까 하는 질문. 여행을 좋아하고, 또래에 비해 여행을 즐겨 하는 편이었지만, 이정도의 해외 장기체류는 해본 적이 만무했기에 가지게 된 순수한 궁금증이었다. 그동안 단기여행을 하면서 한국에 귀국하는 날이 되면 느끼게 되는 감정은 며칠 더 이곳에 머무르고 싶다는 아쉬움과 여운뿐이었기 때문이다.
‘슬슬 돌아갈 때가 되긴 했다’
6개월이 지난 시점, 귀국을 하루 앞두고 탈린 맥도날드에서 아이스커피를 마시며 그 궁금증의 답을 찾았다. 그렇다고 하루라도 일찍 한국으로 귀국하고픈 마음에 귀국편 스케줄을 바꾸려 알아본다던가 할 정도는 아니다. 다만 이전처럼 하루에 3만보씩 걸으며 수백 장의 사진을 찍는 템포의 여행을 할 동력이 줄었다는 것 정도랄까. 일기예보를 보며 귀국 다음날에 맑음 표시가 떠 있다면 또 모르겠지만, 일주일 예보가 모두 구름에 싸여있는 탈린의 날씨는 ‘이만 하면 한국으로 돌아가라’며 내 미련을 지워준다.
한국으로 돌아가기 하루 전, 숙소에서 언덕 하나를 넘으면 닿는 탈린 올드타운으로 발걸음을 옮긴다. 빌뉴스와 리가에 비해 훨씬 많은 관광객이 거리를 채우고 있고, 심심치 않게 한국어까지 들려오는 것을 보니 확실히 탈린이 발트 3국 가운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