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htour_korea

jhtour_korea Contact information, map and directions, contact form, opening hours, services, ratings, photos, videos and announcements from jhtour_korea, Photographer, Suzhou.

chapter 113. 잠시 멈춰야할 때6개월 전, 이스탄불을 경유해 스페인 마드리드에 처음 도착했을 때의 설렘이 아직도 생생하다. 단순한 장기여행이 아니라 해외에서 반년을 살아볼 기회가 생겼다는 사실은 나로 하여금...
27/07/2026

chapter 113. 잠시 멈춰야할 때

6개월 전, 이스탄불을 경유해 스페인 마드리드에 처음 도착했을 때의 설렘이 아직도 생생하다. 단순한 장기여행이 아니라 해외에서 반년을 살아볼 기회가 생겼다는 사실은 나로 하여금 자연스럽게 두 가지 원대한 목표를 꾸려나가게 만들었다. 우선 한 학기 동안 하엔에 머물며 지구 반대편에 '우리 동네'를 만드는 것. 그리고 학기가 끝난 뒤 귀국까지 남은 두 달 동안은 유럽을 가로지르며 최대한 많은 나라에 내 발자취를 남기는 것 말이다.

첫 번째 목표를 이뤘는가 묻는다면 찰나의 고민도 없이 그렇다고 할 것이다. 살면서 언제 유럽 소도시에서 ‘우리’ 집과 ‘우리’ 학교를 두고 살아보겠는가. 관광객을 위해 24시간 영업 점포가 생겨나고 있는 스페인 대도시과 달리 대부분의 도시가 칼같이 시에스타를 지키는 도시. 스타벅스는커녕 아이스 아메리카노의 개념조차 존재하지 않는 도시. 상상과 현실은 대부분 100% 일치하지 않지만, 관광객보다 현지인의 일상이 먼저 보이는 하엔에서의 반년은 내가 상상했던 유럽 소도시 생활에 온전히 부합했다.

두 번째 목표를 이뤘는가 묻는다면, 아직 조금 남았다고 답해야 할 것이다. 리가에서 출발한 열차는 3시간 30분여를 달려 나를 유럽일주의 마지막 도시 탈린에 내려놓는다. 유럽일주를 하며 보통 한 도시에 이틀, 적으면 하루나 한나절 정도 머물렀지만, 탈린에서는 총 3박을 보낼 예정이다. 빠른 템포로 이어온 유럽일주의 속도를 조금 늦추고, 지난 6개월을 천천히 정리할 시간. 탈린에서 보낼 마지막 3일은 귀국을 준비하는 차분한 시간이 되지 않을까.

다른 유럽 도시들에 비해 물가가 크게 저렴한 발트 3국. 덕분에 빌뉴스와 리가, 탈린에서의 내 숙소는 전부 호스텔이 아닌 호텔이다. 전날 밤 10시가 훌쩍 넘어 이곳에 도착해서일까. 퀸사이즈 침대에 대자로 뻗어 오랜만에 늦잠을 자니, 시간은 오전 11시를 가리키고 있다. 앞서 방문했던 발트 3국의 두 도시에 비해 관광객도, 볼거리도 눈에 띄게 많은 도시가 탈린이지만, 침대 밖으로 빠져나오는 내 속도는 유럽일주 기간 뿐 아니라 하엔에서의 생활을 통틀어서도 가장 느리다.

어제도 흐림, 오늘도 흐림, 내일도 흐림. 마지막으로 맑은 하늘을 본 도시가 체코 체스키크룸로프가 될 줄이야. 아무리 여름에 맑은 날이 몰려 있는 유럽이라지만, 국경을 네 차례 넘는 동안 맑은 날이 단 하루도 없었다는 사실은 여행하는 입장에서 이런 불운이 있을까 싶을 정도이다.

유럽에서 머무는 기간이 180일에 가까워질수록, 컨디션이 떨어져가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일지도 모르겠다. 자고 일어나면 머리맡의 나라가 바뀌곤 하는 빡센 일정이 몇 주째 이어졌으니, 눈에 띄지는 않아도 체력은 조금씩 깎여나가고 있었을 것이다. 여기에 요 며칠동안 흐린 날씨까지 계속 겹치니 원하는 사진을 담지 못할 수도 있겠다는 부담이 은근한 스트레스로 다가온다. 체력적인 문제는 쉬면 낫는다지만, 스트레스의 원인인 날씨는 내가 신이 아닌 이상 바꿀 수 없는 노릇이니 컨디션은 쉽게 올라오지 않는다.

‘슬슬 귀국할 때가 되긴 한 건가’
6개월 전, 출국을 하며 막연하게 가졌던 궁금증 하나가 있었다. 외국에 오랜 기간 나가 있으면 언제쯤 한국으로 돌아가고 싶어질까, 혹은 돌아가고 싶은 마음이 들까 하는 질문. 여행을 좋아하고, 또래에 비해 여행을 즐겨 하는 편이었지만, 이정도의 해외 장기체류는 해본 적이 만무했기에 가지게 된 순수한 궁금증이었다. 그동안 단기여행을 하면서 한국에 귀국하는 날이 되면 느끼게 되는 감정은 며칠 더 이곳에 머무르고 싶다는 아쉬움과 여운뿐이었기 때문이다.

‘슬슬 돌아갈 때가 되긴 했다’
6개월이 지난 시점, 귀국을 하루 앞두고 탈린 맥도날드에서 아이스커피를 마시며 그 궁금증의 답을 찾았다. 그렇다고 하루라도 일찍 한국으로 귀국하고픈 마음에 귀국편 스케줄을 바꾸려 알아본다던가 할 정도는 아니다. 다만 이전처럼 하루에 3만보씩 걸으며 수백 장의 사진을 찍는 템포의 여행을 할 동력이 줄었다는 것 정도랄까. 일기예보를 보며 귀국 다음날에 맑음 표시가 떠 있다면 또 모르겠지만, 일주일 예보가 모두 구름에 싸여있는 탈린의 날씨는 ‘이만 하면 한국으로 돌아가라’며 내 미련을 지워준다.

한국으로 돌아가기 하루 전, 숙소에서 언덕 하나를 넘으면 닿는 탈린 올드타운으로 발걸음을 옮긴다. 빌뉴스와 리가에 비해 훨씬 많은 관광객이 거리를 채우고 있고, 심심치 않게 한국어까지 들려오는 것을 보니 확실히 탈린이 발트 3국 가운데

chapter 112. 하나의 마을, 두 개의 국가눈발이 날리는 어두운 플랫폼에 열차가 멈춘다. 에스토니아에 들어왔다는 로밍 문자메시지가 막 도착하고 철길은 북쪽으로 쭉 이어져있지만, 열차의 종점은 이곳, 발가역이다...
25/07/2026

chapter 112. 하나의 마을, 두 개의 국가

눈발이 날리는 어두운 플랫폼에 열차가 멈춘다. 에스토니아에 들어왔다는 로밍 문자메시지가 막 도착하고 철길은 북쪽으로 쭉 이어져있지만, 열차의 종점은 이곳, 발가역이다. 라트비아와 에스토니아의 국경에 자리한 작은 마을 발가. 두 나라를 오가는 직통열차는 존재하지 않지만, 이곳에서 열차를 갈아타면 국경을 넘어 에스토니아로 갈 수 있다.

육로로 국경이 맞닿아 있는 나라라면 이런 국경 기차역의 존재는 그리 낯선 풍경이 아니다. 유레일패스를 이용해 유럽을 여행하는 동안에도 국경을 지날 때마다 이름도 처음 들어보는 작은 역에 열차가 잠시 멈추곤 했고 말이다. 국경 기차역에 도착한 열차에서는 역무원이나 현지 경찰이 여권검사를 하거나, 검문을 하는 일도 왕왕 일어난다. 물론 유럽연합 내 국가들 사이의 자유로운 이동을 보장하는 솅겐 협정이 효력을 발휘하기 시작한 시점부터 이런 검문검색은 사라지거나 약소해졌지만 말이다.

국가 간 이동 수요가 대부분인 역답게 발가역의 시간표도 환승을 전제로 짜여 있다. 라트비아에서 도착한 열차가 들어오면 얼마 지나지 않아 에스토니아행 열차가 출발하고, 반대의 경우도 마찬가지이다. 인구 1만 명 남짓의 작은 국경 마을에 오래 머무를 이유는 없으니 당연한 일일지도 모르겠다.

다만 내가 발가에 도착한 시간인 저녁 9시경에는 에스토니아의 수도 탈린행 열차가 더 이상 운행하지 않는다. 2호선을 타다 마주한 신도림행 열차처럼, 다음날 새벽부터 출발하는 탈린행 열차를 타라며 날 발가에 던져둔 채로 멈춘 열차. 유레일패스 어플을 켜 탈린행 기차의 시간표를 다시 확인한 뒤, 오늘은 이곳에서 하룻밤을 보내기로 한다.

도시보다는 마을이라는 수식어를 붙이는 것이 더 알맞을 장소 발가. 호텔이나 게스트하우스를 찾아보기도 쉽지 않다. 여러 숙소들 가운데 숙박 후기와 가격 등 다양한 요소를 따지고 가며 예약을 하던 이전과 달리, 몇 없는 숙소들 가운데 숙소와 1km 떨어진 거리에 ‘최단거리’ 숙소가 있다는 아고다의 소개에 곧장 예약을 마친다.

‘걸어서 국경을 건널 수 있다고?’
숙소에서 샤워를 마친 뒤 침대에 누워 구글맵을 구경하다 흥미로운 사실 하나를 발견한다. 숙소에서 국경까지는 걸어서 몇 분 거리, 게다가 국경을 사이에 두고 있으면서도 발가의 시가지가 하나의 마을처럼 자연스럽게 이어져 있는 것이다. 방금 전까지만 해도 다음날 오전 열차를 타고 곧장 탈린으로 향할 생각을 하고 있었지만, 계획이 바뀌었다. 국경 위로 만들어진 이 특이한 마을은 이미 내 머릿속에서 경유지가 아닌 여행지로 바뀌어있다. 열차를 타고 막 에스토니아에 넘어왔지만, 내일은 걸어서 라트비아에 잠시 돌아갔다 와보기로 한다.

발가 마을에 없는 것은 숙소뿐만이 아니다. 식사를 하기 위해 구글맵에 주변 식당을 검색해보지만, 이번에도 지도 위로 표시되는 식당은 한 손으로 셀 수 있을 정도이다. 그나마 주변에서 가장 가까운 곳에 있다는 작은 피자가게. 내가 식당을 결정한 것이 아닌, 식당이 나를 간택한 느낌이지만, 이번에도 내게 선택권은 없다.

여행용 배낭이나 캐리어의 흔적을 찾아보기 힘든 마을에 동양인 여행자가 들어오니 몇 없는 식당 손님들의 시선은 나를 향한다. 이내 나로부터 시선을 거둔 사람들은 방금 전까지 못다 한 수다를 계속 떨기 시작한다. 옆 테이블, 앞 테이블 손님들과도 서로 안부를 주고받는 모습을 보니, 흡사 이곳은 발가 마을회관과도 같은 분위기다. 언어는 다르지만, 풍경만 보면 우리나라의 작은 동네 백반집에 들어온 것 같은 느낌이 먼저 든다고나 할까.

창밖을 보자, 눈이 가득 쌓여있는 길가 너머로는 라트비아 국기가 펄럭인다. 구글맵을 보니 식당에서 국경까지의 거리는 불과 100m 남짓이다. 6개월 동안 유럽을 여행하며 오션뷰, 레이크뷰, 마운틴뷰, 심지어 사막뷰 식당까지 가봤지만, 국경뷰 식당은 이번이 처음이다. 아마도 높은 확률로 이곳이 에스토니아 마지막 피자가게이려나.

잠시 뒤 주문한 포테이토 피자가 나온다. 화려한 토핑이나 기교는 없지만 감자와 치즈가 넉넉하게 올라간 정겨운 비주얼의 피자. 이탈리아 현지 피자보다는 오히려 우리나라 피자스쿨을 떠올리게 하는 맛에 여덟 조각을 금세 비우자, 나를 지켜보던 사장님은 흐뭇한 미소를 지어 보인다.

식당을 나서 국경 쪽으로 향하자, 다리 위로 두 국가의 국기가 나란히 보이는 검문 초소가 등장한다. 우리나라에서는 하천으로 쳐주지도 않을 수준의 작은 실개천이 흐르는 다리 아래.

chapter 111. 안개에 덮인 도시(하)리가를 떠나기 전에 하르초를 한 그릇 더 먹어야겠다는 생각을 하며 시장을 나선다.  낮이 되어 높아진 기온에 눈이 녹아내렸는지, 리가 역을 지나 올드타운으로 가는 길은 온...
23/07/2026

chapter 111. 안개에 덮인 도시(하)

리가를 떠나기 전에 하르초를 한 그릇 더 먹어야겠다는 생각을 하며 시장을 나선다. 낮이 되어 높아진 기온에 눈이 녹아내렸는지, 리가 역을 지나 올드타운으로 가는 길은 온통 물기를 머금고 있다. 올드타운이라는 말에 부합하듯 중세 모습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는 보도블록은 빗방울을 머금어 특유의 파스텔톤 색감을 더욱 진하게 내뿜는 중이고, 거리 곳곳에 생긴 물웅덩이에는 리가 성당의 첨탑이 그대로 반영되어 구시가지 골목길의 낭만을 한껏 높여준다.

빌뉴스 올드타운에 비해 리가 올드타운은 골목의 폭이 상대적으로 더 좁고, 건물들이 한층 더 높다. 같은 화각으로 사진을 찍어도 빌뉴스에서는 하늘이 넓게 담겼다면, 리가에서는 건물들이 프레임을 가득 채운다. 맑은 날이었다면 이 특징이 단점일 수도 있었겠지만, 비가 내리기 일보 직전인 지금 고밀도의 구시가지는 오히려 프레임으로부터 흐린 하늘을 숨겨준다.

비슷한 위치에 있고, 비슷한 역사를 공유하는 나라라 그런 것일까. 리가를 여행하는 내내 본의 아니게 직전에 다녀온 빌뉴스와 자꾸 비교하게 된다. 그렇다고 비교의 목적이 꼭 어느 도시가 더 낫네 별로네 하는 우열을 가리려는 것은 아니지만 말이다. 같은 발트 3국의 수도지만 두 도시가 얼마나 다른 얼굴을 하고 있는지 살펴보는 소소한 재밋거리랄까. 결정적으로 빌뉴스와 리가의 올드타운은 모두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된 장소이다. 두 도시 사이 풍경이 유사했다면 이들 모두가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되었을 일은 만무했을 테다.

유럽의 여느 구시가지 골목이 그렇듯, 골목이 끝나는 지점에는 넓은 광장이 등장한다. 한쪽에는 리가를 가로지르는 다우가바 강변이, 다른 한쪽에는 라트비아 깃발을 내건 널찍한 리가 시청 건물이 우뚝 솟아있는 라트비아판 ‘시청 앞 광장’이지만, 시청 맞은편에는 사람들의 시선을 이끄는 건물이 따로 있다.

가파른 경사의 지붕에 화려한 외관이 더해진 건물 두 채. 14세기 처음 세워진 이 건물은 리가의 상인 길드였던 검은 머리 형제단의 본거지로 사용된 ‘블랙헤드의 집’이다. 발트해 연안에서 활동하던 미혼 상인, 선주, 외국인들의 연합체였던 검은 머리 형제단. 길드 이름이 독특한 이유는 이들의 수호성인이 흑인 성인인 성 모리셔스였기 때문이라고 한다. 그 사실을 알고 나서야 건물 입구에 세워진 검은 조각상이 눈에 들어온다.

제2차 세계대전 당시 독일군의 폭격으로 기존의 건물은 완전히 무너졌지만, 전쟁 이후 시민들의 노력으로 블랙헤드의 집은 지금의 모습 그대로 복원되었다고 한다. 일정 금액을 기부하면 복구에 사용되는 벽돌을 살 수 있었다고 하니, 말 그대로 시민의 손으로 복구된 문화재인 격이다. 과거 리가를 방문한 국왕과 외국 사절을 맞이하는 영빈관 역할을 했다는 이곳은, 오늘날에도 라트비아를 찾는 주요 국빈들이 이곳을 방문하는 상징적인 공간으로 활용되고 있다.

낮에도 충분히 화려한 건물이지만, 블랙헤드의 집이 가장 아름다운 순간은 해가 진 뒤라고 한다. 고풍스러운 건물 외벽을 비추는 조명이 하나둘 켜지면 리가를 대표하는 야경이 완성된다고. 아직 해가 남아 있는 지금은 광장 이곳저곳을 둘러보며, 조금 뒤 어디에 삼각대를 세우면 가장 마음에 드는 구도를 담을 수 있을지 미리 눈여겨본다.

바늘로 톡 찌르기만 하면 금방이라도 비가 내릴 것 같던 리가의 하늘. 아니나 다를까 한 방울씩 떨어지기 시작한 빗방울은 이내 소나기로 변해 올드타운의 벽돌길을 다시 적신다. 비가 아니라 눈이 내렸다면 사진을 담기에 더없이 좋은 배경이 되었겠지만, 한 끗 차이로 낭만적인 겨울 풍경은 최악의 촬영 조건으로 바뀌어 버린다. 방금 전까지만 해도 겨울답지 않게 포근한 기온을 반기고 있었는데, 막상 비가 쏟아지기 시작하니 차라리 조금 더 추워서 눈이라도 내렸으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휴식으로 위장한 피신을 위해 근처 아무 카페나 들어가 커피 한 잔을 주문한다. 비까지 내리기 시작하자 안 그래도 자욱했던 안개는 더욱 낮게 깔리고, 창밖으로 보이는 광장은 신비로움과 으스스함 사이를 아슬아슬 오간다.
'해만 지면 사진 몇 장 찍고 바로 역으로 가야지.'
저녁 열차를 타고 리가를 떠나 에스토니아 국경으로 향할 예정인 나. 하루 반 동안 리가에 머무르며 맑은 날은커녕 안개가 자욱한 도시 풍경만 실컷 보았으니, 앞으로 리가를 떠올리게 된다면 가장 먼저 생각나는 단어는 아마도 '안개'일 것 같다.

chapter 111. 안개에 덮인 도시(상)“유레일패스 가능하죠?”“유레일패스요? 잠시만요”티켓을 발매하던 역무원은 ‘유레일패스’라는 말을 듣자 고개를 갸우뚱하며 당황하다, 이내 잠시만 기다려 보라며 의자를 박차고...
18/07/2026

chapter 111. 안개에 덮인 도시(상)

“유레일패스 가능하죠?”
“유레일패스요? 잠시만요”
티켓을 발매하던 역무원은 ‘유레일패스’라는 말을 듣자 고개를 갸우뚱하며 당황하다, 이내 잠시만 기다려 보라며 의자를 박차고 역무실 안쪽으로 들어간다. 별안간 나를 두고 시작한 그들의 작전 회의. 짧고 굵은 회의를 마친 뒤, 역무원은 내를 부르더니 웃으며 패스를 달라 말한다.

이들이 당황할 법도 한 게, 리투아니아 빌뉴스와 라트비아 리가 사이를 잇는 열차의 개통일은 2023년 12월 27일. 개통한 지 채 두 달도 되지 않은 열차이니 아직 여러 가지 행정 시스템이 미비할 수 있을 테다. 게다가 유레일 패스를 이용해 유럽 여행을 하는 사람들이 도달하는 보편적인 동유럽의 마지노선이 체코나 헝가리 정도인 것을 고려하면, 아마도 내가 유레일패스를 이용해 이 열차에 오르는 첫 여행객, 적어도 첫 한국인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

새 열차 냄새가 진하게 풍기는 내부. 화장실도, 식당칸도, 시트까지 모든 것이 다 윤기가 날 정도로 깨끗하다. 이른 새벽 출발한 탓에 졸음을 가득 안고 열차에 올랐지만, 열차 내부에 있는 식당칸에서 커피 한 잔을 주문해 마시니 피로가 싹 풀린다.

국경을 넘어 북쪽으로 달리던 열차는 출발한 지 약 4시간 만에 종착역인 리가 중앙역에 도착한다. 빌뉴스역보다 한층 규모가 커보이는 리가 중앙역사. 서울역처럼 대형 쇼핑몰과 연결되어 있어 그런지 마트와 식당가, 아울렛과 영화관까지 다양한 시설이 기찻길과 얼굴을 맞대고 들어서 있다. 기차역 밖으로 나서니 대로변에는 빌뉴스에서는 보지 못했던 트램까지 도로 위를 미끄러지듯 오가고 있다. 도시의 첫인상만 놓고 보자면 리가가 빌뉴스보다 한층 큰 도시처럼 느껴지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일지도 모르겠다.

눈이 오다 그치다를 반복하는 겨울 날씨인 것인지, 리가 길거리 곳곳에는 녹지 않는 눈이 쌓여있다. 발로 살짝 눈을 밟아보니 뽀드득 소리가 나는 게, 내린 지 얼마 되지 않는 모양이다. 눈이 오다 그치다를 반복한 탓인지 도시 전체에는 짙은 안개도 내려앉아 있다. 몇 안 되는 고층 건물들은 꼭대기가 안개에 가려 보이지 않고, 평소보다 짧아진 가시거리는 도시의 분위기를 차분하게 만든다.

굴다리 아래를 지나 숙소가 있는 역 뒤편으로 향하자, 역 앞과는 사뭇 다른 풍경이 펼쳐진다. 역 앞 차도 너머로는 리가 올드타운의 중세풍 건물들이 줄지어 서 있었지만, 이곳에는 여느 동유럽 도시에서 볼 법한 소련 시절의 흔적이 남은 칙칙한 건물들이 좁은 도로를 따라 이어져있다. 빌뉴스 역 주변과 비견될 정도의 고요함. 숙소가 있는 거리가 이정도로 조용한 것을 보니 오늘은 평소보다도 더 숙면을 취하겠다는 생각이 든다.

숙소에 짐을 맡긴 뒤 가벼워진 몸과 함께 올드타운으로 향하던 길, 우연히 길 왼편에 늘어선 파라솔 행렬에 발걸음을 이끌린다. 한편에는 과일과 야채 매대, 또 한편에는 가방과 옷가지를 파는 매대가 마구 혼재되어 늘어선 공간을 홀린 듯 걷다 보니, 정면에 거대한 아치형 건물이 모습을 드러낸다.

리가에서 가장 큰 규모의 시장이라는 리가 중앙시장. 제1차 세계대전 당시 독일군의 체펠린 비행선 격납고로 사용되던 공간을 시장으로 활용중이라는 특이한 이력까지 가지고 있는 장소다. 시장 밖에 늘어선 노천 매대를 뒤로 하고 건물 안으로 들어서니 가장 먼저 시선을 잡아끄는 것은 야구장으로 써도 손색이 없을 정도로 높은 시장의 층고다. 이 정도는 높아야 비행선 주박이 가능한 건가.

아침을 거른 채 맞이한 점심시간. 오랜만에 새벽같이 움직였기에 배가 고픈 것은 당연한 일이다. 다행히 빌뉴스 시장과 달리 리가 중앙시장에는 푸드코트 형태의 식당가가 시장 한편에 조성되어 있다. 테이블이 쫙 깔린 널찍한 공간과 그 주위를 빙 두르고 영업 중인 다양한 식당들. 사진과 음식 샘플에 의지해 먹을 음식들을 물색하던 도중 뜨끈한 국물요리 앞에 발이 멈춘다. 빨간 국물 안에 고기와 쌀이 들어있는 국물 요리. 이름도 모르는 음식이지만, 육개장이나 경상도식 소고기무국과 다를 바 없는 비주얼은 어지간해선 실패하지 않겠다는 강한 확신을 준다.

주문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나온 ‘라트비아 국밥’. 뚝배기 대신 종이 용기에 담겨져 나왔지만, 사진이 아닌 실물로 본 음식의 비주얼은 더욱 국밥스럽다. 부추나 깻잎 대신 고수가 올라가 있고, 호두가 뿌려져 있는 것이 분명 한국식은 아니지만, 고수하면 사족을 못 쓰는 내 입장에서는 오히려 고수 토핑이 가점요인이랄까.

chapter 110. 시간이 쌓인 도시빌뉴스에서 맞이하는 두 번째 날이자 마지막 날. 숙소 근처에 있다는 시장으로 향한다. 시장이라기보다는 박물관이나 미술관에 더 어울릴 법한 건물 안으로 들어서자, 고풍스러운 그림...
15/07/2026

chapter 110. 시간이 쌓인 도시

빌뉴스에서 맞이하는 두 번째 날이자 마지막 날. 숙소 근처에 있다는 시장으로 향한다. 시장이라기보다는 박물관이나 미술관에 더 어울릴 법한 건물 안으로 들어서자, 고풍스러운 그림이나 유물 대신 고기와 채소가 공간을 가득 채우고 있다.

“너 한식 걱정은 안 해도 되겠다.”
아침을 먹을 가게를 찾으며 시장 안을 둘러보던 중, 찾고 있던 식당 대신 예상치 못한 풍경이 눈에 들어온다. 불닭볶음면을 비롯한 한국 라면과 종가집 팩김치, 그리고 여러 K팝 아이돌의 포스터로 외벽을 가득 채운 한식 매대다. 아직 이른 시간이라 문은 닫혀 있었지만, 오늘 떠나는 나와 달리 이곳에서 반년을 보낼 채연이에게는 꽤 든든한 존재가 되지 않을까 싶어 후다닥 사진을 찍는다.

‘도시 전체가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인 곳’
유럽 패키지 여행을 가 가이드의 설명을 듣거나 여행 프로그램을 보다 보면 단골처럼 들려오는 소리이다. 다 비슷해 보이는 풍경에도 타이틀이 붙으면 아까까지 보이지 않던 철학이 느껴지는 것처럼,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은 사람들의 관심을 끌기 제격인 주제이니 말이다.

빌뉴스라는 도시를, 나아가 리투아니아라는 나라를 처음 들어본 사람도 적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이곳에 조금 더 관심을 가져볼 만한 이유를 하나 꼽자면, 빌뉴스 구시가지 역시 도시 전체가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된 공간이다. 13세기부터 18세기까지에 걸쳐 순차적으로 형성되고 발전되어온 빌뉴스 구시가지. 버스터미널과 기차역에서 걸어서 5분도 채 지나지 않아, 별다른 특색을 찾아볼 수 없었던 고요한 도시 풍경 뒤에 숨겨져 있던 중세 유럽의 시간이 모습을 드러낸다.

어제 채연이를 만나러 가는 길에 지나쳤던 곳도 구시가지였지만, 이동이 목적이었던 어제와 관광이 목적인 오늘은 같은 길을 걸어도 받아들여지는 풍경이 다르다. 좁은 골목을 따라 다닥다닥 붙어있는 건물들과 캐리어 바퀴에겐 영 달갑지 않은 울퉁불퉁한 돌바닥까지. 언뜻 보기에는 다른 유럽 도시의 구시가지와 크게 다르지 않은 풍경이다. 다만 숲이 아닌 나무를 보듯 카메라를 들고 골목 곳곳을 천천히 살펴보니, 조금 전까지는 보이지 않던 차이들이 하나둘 눈에 들어오기 시작한다.

영국의 길거리에서 보이던 갈색 벽돌 건물, 프랑스에서 보았던 대리석 외관의 건물, 슬로바키아에서 봤던 파스텔톤 건물과 이탈리아에서 본 원기둥이 처마를 떠받드는 건물까지. 유럽 어딘가에서 한 번씩은 봤던 건축 양식들이 한 거리에 자연스럽게 공존하고 있다. 다섯 세기에 걸쳐 만들어졌다는 빌뉴스 구시가지. 시기별로 유행하던 건축 양식이 천차만별이었기에, 다양한 스타일의 건물들이 차곡차곡 거리에 쌓이면서 수백 년을 압축해둔 듯한 시가지가 태어난 것이다.

구시가지의 지름은 약 2km 정도. 천천히 걸어도 40분이면 끝에서 끝까지 걸을 수 있을 만큼 아담한 규모이다. 빌뉴스역과 숙소가 구시가지의 남쪽 끝에 있다면, 대성당을 지나 북쪽 끝에 가까워질 즈음 오늘의 마지막 목적지가 모습을 드러낸다.

한국인 여행 후기가 많지 않은 도시를 여행할 때마다 내가 가장 자주 활용하는 것은 구글맵이다. 단순히 길을 찾기 위한 수단이 아니라, 지도를 확대하고 축소해가며 흥미로워 보이는 장소가 있는지 하나씩 찾아보는 용도로 사용하는 것. 이 방법으로 마이너한 도시들을 오가며 발견하게 된 인상적인 장소들 역시 적잖이 있었고 말이다. 빌뉴스 여행의 마지막 목적지인 KGB 박물관 역시 그런 '발품 찾기' 끝에 눈에 들어온 장소였다.

소련에게, 나치에게, 그리고 다시 소련에게. 타 국가에 의해 식민지배, 혹은 괴뢰국가가 되었던 여느 동유럽 국가들처럼, 발트 3국의 일원인 리투아니아 역시 외세의 침략과 식민지의 아픔을 간직하고 있는 국가이다. 그리고 리투아니아의 수도 빌뉴스에서 이러한 근대사를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대표적인 장소가 바로 이곳, KGB 박물관이다.

리투아니아가 소련에 점령당했던 1940년부터 독립을 이뤄낸 1991년까지 이 건물은 여러 소련 보안 기관들의 본부로 사용되었다고 한다. 2차 세계대전 당시 나치 독일이 빌뉴스를 점령했을 시기조차도 나치의 비밀경찰인 게슈타포가 이 건물을 본부로 삼았다고 하니, 빌뉴스 사람들에게 이 건물은 외세의 지배를 상징하는 공간인 셈이다.

건물 내부로 들어가자, 곳곳에는 스탈린의 초상화와 나치 독일의 상징인 하켄크로이츠가 보인다. 제복과 포스터, 각종 문서를 통해 보이는 두 국가의 상징물들.

chapter 109. 바통터치오랜만에 본 빌딩숲은 반가웠지만, 오랜만에 야간열차 대신 택한 야간버스는 썩 반갑지 않다. 물론 내가 머리를 기댈 곳만 있으면 어디서나 숙면을 하는 것은 맞지만, 어디까지나 잠을 잘 수...
11/07/2026

chapter 109. 바통터치

오랜만에 본 빌딩숲은 반가웠지만, 오랜만에 야간열차 대신 택한 야간버스는 썩 반갑지 않다. 물론 내가 머리를 기댈 곳만 있으면 어디서나 숙면을 하는 것은 맞지만, 어디까지나 잠을 잘 수 있다는 것이지, 앉아있는 탓에 몰려오는 허리와 목, 다리의 통증은 다른 사람과 다를 바 없으니 말이다.

바르샤바에서의 이틀을 비교적 여유롭게 보낸 뒤, 유럽일주의 마지막 무대가 될 발트 3국으로 향한다. 에스토니아, 라트비아, 그리고 리투아니아. 세계지리 시간에 세 국가의 위치와 이름을 ‘에라리’로 외웠던 것 외에는 나와 큰 접점이 없는 나라들이었다. 6개월 전까지는 말이다.

‘나 빌뉴스 교환학생 가!’
막 하엔에 집을 구하고 스페인 생활에 적응하고 있었을 무렵인 작년 8월 말, 대외활동을 함께 했던 채연이에게 연락이 왔다. 통상적으로 파견 기간보다 반년 일찍 선발하는 교환학생. 2023년 2학기 교환학생을 위해 스페인으로 온 나에 이어 채연이의 파견 기간은 2024년 1학기가 된 것이다.

“출국 계획 잡히면 말해줘! 나 2월까지 유럽 여행하다 귀국할 거야.”
아직 종강 후 유럽 여행 계획은커녕 다가오는 주 주말에 어느 나라로 여행을 갈지 고민 중인 시기였던 나. ‘밥 한 번 먹자’ 격의 느낌으로 가벼운 답장을 남겼었지만, 6개월이 지난 뒤 어쩌다보니 유럽 내 다른 국가도 아니고 리투아니아 빌뉴스 현지까지 오게 되었다.

빌뉴스 기차역과 붙어 있는 버스터미널. 한밤중과 새벽의 사이 어중간한 시간대에 도착한 빌뉴스의 첫인상은 고요하기만 하다. 높은 건물은 물론이거니와 수백 년의 역사를 지닌 구시가지 분위기의 건물조차 보이지 않는 빌뉴스 버스터미널 앞. 가로등마저 간격을 넓게 두고 서 있는 거리 위에서는 터미널과 숙소 사이에 있는 맥도날드의 간판만이 이 도시의 등대 역할을 해준다.

“그럼 11시에 만날까?”
부스스한 채로 로비에 들어선 내게 얼리체크인을 선물해 준 호텔. 그 덕에 숙소에서 잠깐 눈을 붙인 뒤 일어나니 연락이 와 있다. 점심식사로 리투아니아 전통음식을 먹고 싶다는 내 말에 채연이는 리투아니아 전통 음식은 다 감자라며 손사래를 친다. 분명 채연이가 리투아니아에 온 지 불과 한 달도 채 되지 않았을 텐데, 아마도 그 사이에 많은 감자를 해치운 모양이다.

빌뉴스 구시가지 중심에 있는 랜드마크, 빌뉴스 성당. 숙소에서 30분 정도 걸어 성당의 십자가가 보이기 시작하자, 건물 아래로 익숙한 얼굴이 보인다. 코트에 목도리까지, 리투아니아의 추위에 중무장한 채 나온 채연이. 함께 수업을 듣는다는 일본인 친구와 프랑스인 친구까지 셋이서 유럽을 가로질러온 나를 반갑게 맞이해준다.

“아까 보내준 스테이크집 봤어? 스테이크 먹어도 괜찮지?”
리투아니아 전통음식 대신 들고 온 채연이의 추천 점심메뉴는 다름 아닌 스테이크. 유럽 대륙을 가로지르며 케밥 일주를 하고 다녔을 정도로 식비에서 철저한 비용 절감을 이뤄온 내게 스테이크는 고려조차 하지 않았던 생소한 메뉴임이 틀림없다. 여기 스테이크는 싸다고 하는 채연이의 말에도, ‘스테이크가 싸봤자 스테이크 가격이겠지’라는 의심어린 생각이 지워지지는 않지만, 이미 발걸음을 가게 방향으로 향하고 있는 사람은 셋. 다수가 원한다면, 그리고 빌뉴스의 호스트가 원한다면 또 따라주는 것이 여행 아니겠는가 하는 마음으로 스테이크를 썰러 간다.

“스테이크가 10유로라고?”
근사하게 꾸며진 가게 내부. 실시간으로 그릴 위에서 고기가 구워지는 소리가 들려오는 공간에 앉아 메뉴판을 들자 내 눈이 커진다. 닭고기와 돼지고기, 소고기와 해산물 스테이크까지 고기 종류와 부위별로 다양한 스테이크 메뉴들이 차례로 쓰인 메뉴판의 평균 가격은 10유로, 한화로 14,000원 안쪽이다. 가장 비싼 메뉴인 라지 사이즈 비프 스테이크마저도 10유로대 초반. 서유럽이라면 케밥에 감자튀김 정도를 겨우 먹을 수 있는 가격대에 포크와 나이프로 고기를 썰 수 있다는 사실에 놀라움을 숨기지 못하자, 채연이는 나를 보고 빌뉴스 물가가 저렴하지 않냐며 웃는다.

샐러드와 사이드 메뉴까지 선택 가능한 10유로의 만찬. 채연이에게 ‘유럽에서 돈 아끼고 싶으면 주변 케밥집을 찾아라’라는 조언을 해주려고 했던 내 계획이 입 안에 들어간 소고기와 함께 녹아 없어진다. 대신 해줄 조언이 있다고 하면 일주일에 세 번 이상은 여기 와서 우아하게 고기를 썰라는 말 정도이려나. 하엔에 이 가격에 이 정도 스테이크를 내주는 가게가 없었다는 사실이 유감스러울 따름이다.

chapter 108. 한창 고층 빌딩이 신기할 시기개인적인 가치관이지만, 여행은 익숙하지 않은 것을 즐기기 위해 떠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귀로는 평소에 듣지 못하던 언어가 들려오고, 눈에는 낯선 양식의 건축물과 ...
07/07/2026

chapter 108. 한창 고층 빌딩이 신기할 시기

개인적인 가치관이지만, 여행은 익숙하지 않은 것을 즐기기 위해 떠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귀로는 평소에 듣지 못하던 언어가 들려오고, 눈에는 낯선 양식의 건축물과 풍경이 펼쳐지는 것. 심지어는 익숙한 간판에 이끌려 들어간 프랜차이즈 식당에서조차 우리나라와 다른 메뉴 구성과 맞닥뜨리는 것이 여행이 아닐까. 물론 이런 익숙하지 않음은 때때로 불편함을 동반한다. 언어가 통하지 않아 헤매기도 하고, 예상하지 못한 문화 차이에 당황하기도 한다. 그럼에도 사람들이 여행을 떠나는 이유는 결국 그 낯섦과의 만남, 그리고 그 속에서 발견하는 재미 때문이 아닐까 싶다.

유럽으로 향하는 사람들의 상상 속 ‘유럽 여행’에는 으레 고풍스러운 건물과 성당이 만들어내는 이국적인 도시 풍경, 노천카페에서 즐기는 여유로운 커피 한 잔이 자리하고 있지 않을까. 적어도 6개월 전, 내 머릿속 유럽의 모습은 그랬다. 수십, 수백 년은 족히 된 석조 건물들이 좁은 골목을 따라 빽빽하게 늘어서 있고, 도시 한가운데에는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되어 있을 법한 고딕 양식의 성당이 하늘을 찌를 듯 솟아 있는 풍경. 유럽에 대한 환상을 품은 사람들이 가장 먼저 떠올리는 장면도 아마 이와 비슷할 것이다.

하엔에 도착했던 첫날, 집 앞 거리의 풍경을 보며 환상 속 풍경이 실제로 존재하는구나 하는 생각을 했다. 좁은 골목은 집 앞 거리였고, 수백 년은 되어 보이는 석조 건물은 내가 살 집이었다. 집에서 나와 몇 십 걸음만 옮기면 스페인에서도 손꼽히는 규모를 자랑하는 하엔 대성당이 우뚝 솟아 있었고 말이다.

다만 익숙함이란 참 무서운 것이다. 한 달, 두 달 시간이 흐르자 이 풍경은 더 이상 특별한 풍경이 아니게 되었다. 바르셀로나의 사그라다 파밀리아 정도가 아니면 성당은 그저 성당으로 보였고, 피렌체 구시가지급 풍경이 아니라면 골목길 역시 집 앞 골목과 크게 다르지 않게 느껴졌다. 여행이 생활로 바뀌는 순간, 상술한 유럽의 풍경은 별 감흥이 느껴지지 않는 익숙한 풍경이 되어버린 것이다.

익숙한 유럽의 거리를 마구 거닌지 6개월 차가 되어갈 무렵, 바르샤바에 도착해 기차역 밖으로 나서자 잊고 지내던 풍경이자 익숙하지 않게 된 풍경이 눈앞에 펼쳐진다. 바르샤바 중앙역을 중심으로 펼쳐지는 빌딩숲과 휘황찬란한 야경. 서울에 있을 때 일상적으로 보던 여의도 빌딩숲의 야경과 뭐가 다르냐 할 정도의 풍경이지만, 반년 만에 다시 보는 현대적인 도시 풍경은 유럽의 성당들을 보는 것보다 더 ‘여행스러운’ 풍경이 된다.

물론 그렇다고 유럽의 다른 도시에 아예 현대적인 빌딩이 존재하지 않는 것은 아니다. 런던의 카나리 워프나 파리의 라데팡스처럼 수도격 대도시에는 고층 빌딩으로 이뤄진 신시가지가 존재하니 말이다. 다만 내가 바르샤바 시내 풍경에 흥미를 느끼는 것은 이러한 신시가지가 도시 외곽이 아닌 도심 한복판에 있다는 사실 때문이다. 버스터미널이나 기차역에 도착해 마주하는 도시의 첫 인상에 고풍스럽다라는 형용사를 붙이는 것이 따분해질 때 즈음, 바르샤바의 첫 인상은 현대적이다, 휘황찬란하다라는 형용사를 내게 가져다준다.

사실 다른 유럽의 도시들과 달리 바르샤바가 현대적인 분위기를 가득 풍기게 된 것에는 아픈 이유가 있다. 2차 세계대전 도중 전장의 중심지가 되었던 바르샤바. 이곳을 점령 중이던 나치 독일과 종전 이후 이곳의 공산화를 꿈꾸던 소련, 폴란드의 자주독립을 꿈꾸던 폴란드 저항군이 한데 뒤섞였던 도시는 잿더미로 변해버렸던 것이다.

제로베이스에서 다시 시작한 도시여서 그랬던 것일까. 바르샤바는 도시를 다시 세우며 다른 유럽 도시들보다 현대적인 건축물을 훨씬 적극적으로 받아들였다고 한다. 전쟁 전 바르샤바의 풍경을 토대로 옛 건축물과 시가지를 정교하게 복원하는 한편 새롭게 지어지는 시가지에는 해외 자본을 적극적으로 받아들여 마천루들을 하나둘 올리게 된 것이다. 이 때문에 유럽연합 내에서 가장 높은 건물 역시 이곳 바르샤바에 있고 말이다.

중앙역 앞에 잡아둔 에어비엔비. 우중충한 날씨를 빌미 삼아 오랜만에 느즈막하게 오전 시간을 보내다 보니, 시간이 얼마 지난 것 같지도 않은데 날은 벌써 뉘엿뉘엿 어두워진다. 4시 반이면 완전히 해가 지는 2월 중순의 바르샤바. 원래대로라면 일찍 해가 지는 것이 여행하는 입장에서 좋을 리 만무하지만, 야경이 아름다운 도시에서 일몰 시간이 빨리 다가오는 것은 좋은 일이려나.

안녕하세요, 북토그래퍼입니다.6월 26일부터 7월 4일까지 롯데백화점 잠실점 2층 키네틱그라운드에서 진행된 2026시즌 상반기 FC서울 사진전이 막을 내렸습니다.경기도, 새로운 소식도 없는 휴식기가 얼마나 지루한 시...
04/07/2026

안녕하세요, 북토그래퍼입니다.
6월 26일부터 7월 4일까지 롯데백화점 잠실점 2층 키네틱그라운드에서 진행된 2026시즌 상반기 FC서울 사진전이 막을 내렸습니다.

경기도, 새로운 소식도 없는 휴식기가 얼마나 지루한 시간인지 누구보다 잘 알기에, 늘 휴식기 동안 팬들이 함께 즐길 수 있는 콘텐츠가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해왔습니다. N석에서 카메라를 들기 시작한 이후, 2022년부터 2024년까지 매년 개최해 온 FC서울 연말 사진전은 그런 고민에 대한 저만의 답이었습니다. 하지만 2025년에는 여러 사정으로 사진전을 열지 못했고, 개인적으로도 무척 아쉬움이 남았습니다. 그런 가운데 좋은 기회로 FC서울 구단과 함께 이번 사진전을 준비할 수 있었고, 그 어느 때보다 뜻 깊은 시간을 보낼 수 있었습니다.

네 번째로 준비한 사진전이지만, 이번 전시는 그 어느 때보다 특별한 의미를 지닌 사진전이었습니다. FC서울 사진전이라는 이름 앞에 '북토그래퍼'라는 작가명을 당당히 내걸고 진행한 첫 전시였기 때문입니다. 관중석 1열에서 카메라를 잡은 지도 어느덧 5년. 더 좋은 사진을 담기 위해 선수들의 움직임과 동선을 읽고, 경기장의 감정을 조금이라도 더 생생하게 전하기 위해 여러 시행착오를 겪어왔습니다. 이번 사진전은 그 시간들이 조금씩 쌓여 만들어낸 결과물이었다고 생각합니다. 무엇보다 제 이름을 전면에 내걸고 사진전을 진행할 수 있도록 흔쾌히 믿어주시고 함께해 주신 FC서울 구단에도 다시 한 번 깊이 감사드립니다.

팝업스토어와 사진전을 찾아와 주신 모든 팬 여러분께도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사진들을 구경하다 발걸음을 멈추고, 사진 속 순간을 회상하며 서로 이야기를 나누고, 미소 짓는 모습을 볼 때마다 '이번 전시를 준비하길 정말 잘했다'는 생각을 수없이 되새겼습니다. 상암과는 정반대편인 잠실에서 열린 전시였음에도 수백, 수천 명의 팬 여러분께서 찾아와 주셨고, 덕분에 전시된 50장의 사진도 더욱 큰 의미를 가질 수 있었습니다. 진심으로 감사합니다.

물론 강동희 명예기자님, 해리포토 작가님, FA포토 소속 사진작가님을 비롯해 그라운드 위에서 선수들의 순간을 기록하는 작가님들에 비해 제 사진은 아직 발전해야 하는 부분들이 많습니다. 하지만 훌륭한 작가님들의 좋은 사진을 많이 보고, 이들을 자양분 삼아 배우고 연구하며 저만의 시선과 색깔을 더욱 발전시켜 나가겠습니다.

백화점 내 타 매장을 방문하는 사람들의 발걸음이 사진 앞에서 멈췄던 것을 보며 어렸을 적, 서울역과 상암 CGV(현 메가박스 상암점)에서 진행되었던 FC서울 사진전이 떠올랐습니다. 연고지 안에서의 행사를 통해 자연스럽게 FC서울이라는 콘텐츠를 사람들에게 노출시키고, 새로운 관심과 잠재적인 팬층을 만들어내는 것. 이번 사진전 역시 그런 역할을 조금이나마 해낼 수 있었기를 바랍니다.

2016년, FC서울 팬파크가 개장하던 날 구단의 유튜브 영상에서 짤막하게 인터뷰를 했던 기억이 납니다. “사인회나 행사들을 많이 진행했으면 좋겠어요!”라고 답했던 16살의 저는 그로부터 6년이 지나 인터뷰를 진행했던 그 장소에서 직접 사진전을 개최했고, 10년이 지나 직접 이름을 걸고 구단과 협업해 한층 더 규모가 커진 사진전을 개최했습니다.

이번 주말부터 후반기로 접어든 2026시즌 K리그. 기나긴 시즌이 끝난 뒤 2026시즌 FC서울 연말 사진전으로 다시 인사드리고 싶습니다. 언제 어디서 어떤 방식으로 펼쳐질지는 모르겠지만, 하나 원하는 바가 있다면 반년 뒤 개최될 사진전의 메인 사진으로는 우승트로피를 번쩍 들어 올리는 장면이 자리하고 있길 빕니다.

이제 한 달 반 동안의 휴식기를 마치고 경기장으로 돌아갈 시간입니다. 언제나처럼 FC서울이 향하는 곳, 응원석 1열에서 함께 뛰고 노래하며 90분간의 짜릿한 순간들을 프레임 속에 담아보겠습니다.

지금까지 2026시즌 상반기 FC서울 사진전, ‘앞으로, 오직 앞으로’였습니다.
감사합니다.

chapter 107. 아우슈비츠 (하)“처음에 말 한 것처럼, 여기서는 사진이나 영상 촬영이 금지됩니다.”다음 전시실로 가기 전, 가이드가 재차 안내를 한다. 벽 곳곳에도 사진 촬영 금지 안내판이 붙어있는 가운데,...
16/06/2026

chapter 107. 아우슈비츠 (하)

“처음에 말 한 것처럼, 여기서는 사진이나 영상 촬영이 금지됩니다.”
다음 전시실로 가기 전, 가이드가 재차 안내를 한다. 벽 곳곳에도 사진 촬영 금지 안내판이 붙어있는 가운데, 전시실 내부로 들어가자 옷감으로 사용되기 위해 뽑혔다는 여자 수용인의 머리카락이 족히 20미터는 넘어 보이는 벽 한쪽을 꽉 채우고 있다. 설마 모조품이겠지 생각하며 가이드의 설명을 듣던 도중, 여기 전시된 머리카락 전부 이름 모를 이들의 실제 머리카락이란 말을 듣자마자 나도 모르게 소름이 돋는다. 입구에서 본 뼛조각과 마찬가지로, 이곳에 있는 머리카락 역시 누구의 머리카락인지도 모를뿐더러 몇 명분의 머리카락인지도 알 방법이 없다.

수용소 운영 초반 여느 감옥마냥 수감자들의 이름과 사진이 담긴 수인명부를 제작해 관리하던 나치 독일은 홀로코스트의 시작을 기해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난 수감자들로 인하여 수인명부 작성을 포기했다고 한다. 그 대신 그들이 수감자를 관리하기 위해 사용했던 방법은 문신. 수인번호를 팔뚝에 문신으로 박아 넣게 함으로써 이름과 사진, 번호 대신 번호만을 사용한 수감자 관리를 시작한 것이다. 어차피 나치가 가스실에서 죽은 사람들의 이름을 알 필요는 없었을 테니 말이다.

나치 독일이 운영했던 유대인 절멸 수용소는 이곳을 포함해 총 6곳. 유럽 각지에서 수용소로 끌려간 유대인들이 어느 곳에서 최후를 맞이했는지는 들고 온 가방이나 옷가지에 자신의 이름, 혹은 주소를 써두지 않았던 이상 오늘날까지도 파악할 방법이 없다며 가이드는 말한다.

전시관 관람이 끝난 뒤, 본격적으로 수용소 내부를 둘러보기 시작한다. 투어를 시작했을 때도 관람객들의 분위기가 그리 밝았다는 것은 아니었지만, 전시실 안을 가득 채웠던 무거운 공기는 사람들을 한층 더 차분하고, 또 엄숙하게 만든다. 여러 그룹이 동시에 투어를 진행하다 보니 수용소 곳곳에서 보이는 그룹 관광객들. 이곳에 처음 도착했을 때 보았던 수학여행 온 학생들도 불과 한 시간 전과 그 분위기가 180도 달라진 채 가이드의 설명을 듣고 있다.

수용소의 한쪽 구석, 붉은 벽돌로 쌓인 담장 속 홀로 벽의 색이 다른 장소다 등장한다. 벽 너머로는 깃대 다섯 개가 세워져 있고, 벽 앞에는 수많은 꽃다발이 차곡차곡 쌓여있다. 이 벽의 이름은 죽음의 벽. 아직 아우슈비츠에 가스실이 지어지기 전, 나치는 수용소의 규칙을 어긴 자나 유대인을 이곳에서 즉결처형 했다고 한다. 수많은 총성이 울려 퍼졌을 공간과 수많은 총알이 박혔을 벽. 지금은 총소리 하나 들리지 않지만, 먹구름이 낀 흐린 날씨와 수십 년째 그 자리를 지키고 있는 벽은 이곳에서 어떤 일이 있었을지 자연스럽게 떠올리게 만든다.

총살과 교수형을 통해 수용자들을 죽이던 나치는 보다 값싸고 효율적인 방법을 찾아 나선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등장한 것이 나치의 유대인 학살, 홀로코스트를 상징하는 존재인 시클론-B 가스와 가스실이다.

관람 초반 들렀던 전시실에는 가스실에서 사용된 독가스, 시클론-B의 깡통이 전시되어 있다. 여자 수용자들의 머리카락이 전시된 공간처럼, 한쪽 벽을 꽉 채우고 있던 시클론-B 깡통은 셀 수 없는 사람들의 목숨이 이곳에서 빼앗겼다는 것을 간접적으로 와 닿게 만들었다. 시클론-B 한 통으로 수백 명에 달하는 사람들을 살해할 수 있었다고 설명하는 가이드. 그 말을 듣고 다시 깡통들을 바라보니, 언뜻 봐도 수백 개는 넘어 보이는 금속 깡통은 이 수용소에서 벌어진 인종청소의 규모를 짐작할 수 있게 한다.

좁은 철문 안으로 들어가자, 창문 하나 없이 콘크리트로 싸여있는 실내가 등장한다. 나치가 샤워를 시켜주겠다는 명분으로 수많을 수용자들을 끌고 들어왔던 공간. 문이 굳게 잠긴 뒤 나오던 것은 물이 아닌 가스였지만 말이다.

가스실을 샤워실로 위장시켜 '샤워를 시켜준다'라는 명분하에 그들을 가스실 안으로 들여보냈다는 사실은 이미 알고 있었다. 다만 끝까지 의심의 끈을 놓지 않은 유대인들을 향해 간수들이 "이따 옷을 가지러 나와야하니 자신의 라커 번호를 기억해둬라" 라며 그들을 안심시켰다는 가이드의 설명은 내 혀를 내두르게 만든다.

가스실과 멀지 않은 곳에 있는 시체 소각장. 끔찍할 정도로 효율적으로 설계된 듯한 동선은 불과 수분 전까지 살아있던 사람이 재로 변하기까지 수 시간이면 충분하겠다는 생각을 들게 한다. 정문을 통해 들어와 막사를 지나고, 죽음의 벽과 가스실을 거쳐 화장장에 도달한 가이드 투어.

chapter 107. 아우슈비츠 (상)모닝콜을 해준다는 말에 알람조차 맞추지 않고 잠들었던 어젯밤. 문을 두드리는 소리에 부스스 일어나 문고리를 돌리니 바닥에 아침식사가 담긴 종이 상자 하나가 놓여있다. 크라쿠프까...
14/06/2026

chapter 107. 아우슈비츠 (상)

모닝콜을 해준다는 말에 알람조차 맞추지 않고 잠들었던 어젯밤. 문을 두드리는 소리에 부스스 일어나 문고리를 돌리니 바닥에 아침식사가 담긴 종이 상자 하나가 놓여있다. 크라쿠프까지 남은 시간은 어느덧 한 시간 남짓. 세수를 하고 짐을 싸니 그마저도 쏜살같이 지나간다.

이윽고 크라쿠프역에 도착한 열차. 밤새 흔들리는 객실에 몸을 맡기고 있었던 탓인지, 오랜만에 흔들리지 않는 땅을 밟자 스트레칭부터 하게 된다. 빵과 주스가 달랑 있던 아침 식사로는 허기가 채워지지 않아 대합실 안에 있는 맥도날드에서 맥모닝을 먹으며 창밖을 보니, 출근 시간인지 역 안은 등교하는 학생들과 출근하는 직장인들로 가득하다. 빠르게 식사를 마친 뒤, 캐리어를 물품보관소에 맡겨둔 채 다시 플랫폼으로 향한다. 밤새 기차를 타고 국경을 넘어왔지만, 오늘의 목적지까지는 아직 조금 더 가야 한다.

크라쿠프에서 목적지인 오셰비엥침역까지 걸리는 시간은 50분 남짓. 기차라기보다는 도시 간 광역전철 느낌이 물씬 풍기는 열차를 탄 지 얼마 지나지 않아 열차에서는 도착 안내방송이 흘러나온다. 한적한 플랫폼과 편의점 하나 정도만 있는 아담한 역사를 가진 이곳. 이름도 처음 들어보는 역에 왜 왔냐며 갸우뚱할 수도 있지만, 이곳의 지명을 폴란드식이 아닌 독일식으로 읽는 순간 그 이유는 금방 알아차리게 된다.
‘아우슈비츠’

유럽 일주를 계획하고, 동유럽으로 향하는 루트를 짜던 시절부터 아우슈비츠 수용소는 꼭 한번 들러보고 싶었다. 수도인 바르샤바에서는 편도 4시간이 넘는 거리, 크라쿠프에서도 한 시간 거리임에도 불구하고 하루를 온전히 투자할 가치가 있다고 생각했고 말이다. 전공이 역사학이라는 점, 특히 근대사에 관심이 많다는 점에서 비롯된 동기는 유럽, 나아가 세계 근대사의 상징적 장소 가운데 하나로 내 발걸음을 이끌었다.

2차 세계대전이 끝나고, 수용소가 폐쇄된 지 수십 년이 지났지만, 오셰비엥침 마을 분위기는 왠지 모르게 무겁다. 오늘따라 날씨마저 이슬비가 오다 안 오다를 반복하는 우중충하고 습한 날씨. 체코의 동화마을을 둘러본 어제, 넓게는 유럽 일주 전체를 통튼 분위기와 오늘의 분위기는 180도 다르다.

역을 나와 평범한 주택가와 상점가를 지나 20분가량 걸었을까. 박물관 입구를 알리는 표지판과 함께 여러 대의 관광버스, 그리고 수많은 사람들이 눈에 들어온다. 특히 체험학습을 온 듯한 학생들의 모습이 유독 많다. 입구와 나란히 서 있는 콘크리트 벽 너머에는 인류 역사상 가장 악명 높은 전쟁 범죄의 현장이 자리하고 있지만, 삼삼오오 모여 떠들고 사진을 찍는 이들의 모습만 떼놓고 보면 영락없는 수학여행 온 학생들의 풍경처럼 느껴진다.

아우슈비츠 기념관 관람은 기본적으로 가이드 투어 중심으로 운영된다. 일부 시간대에는 자유 관람이 가능하지만 인원이 제한적이고 시간대도 한정적이어서 대부분의 방문객들은 가이드 투어를 선택하게 된다. 예정된 가이드 투어 시간이 다가오자, 입구 주변에는 각 언어별 투어 그룹이 차례로 모여든다. 시간차를 두고 출발하는 언어별 그룹들. 영어, 폴란드어, 독일어 투어가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고, 그 사이사이에 러시아어와 이탈리아어, 프랑스어 투어가 드문드문 배치되어 있다. 한 그룹 당 약 30명 규모로 운영되는 투어. 상대적으로 널널한 타 언어들에 비해 영어 투어 가이드 주위로는 나를 비롯해 30명이 꽉꽉 몰려있다.

앞장선 가이드를 따라 시작하는 투어. 콘크리트 장벽이 양쪽으로 높게 쳐진 통로를 따라 계속 걸어가다 보니, 머지않아 야외 공간이 다시 펼쳐진다. 수용소 앞 공터에서 이곳의 역사에 개한 간단한 설명과 투어 도중 주의사항에 대해 짤막한 안내를 하는 가이드. 귀로는 설명을 들으며 주변을 기웃거리던 내 시야에는 아우슈비츠를 상징하는 간판이 들어온다.

‘Arbeit macht Frei’
한국어로 변역하면 ‘노동이 너희를 자유롭게 하리라’라는 뜻의 표어는 아우슈비츠 수용소 정문에 붙은 문구이다. 나치 독일에 의해 간단한 물건들만 챙겨온 채 이곳으로 끌려온 유대인들이 기차에 내려 처음으로 보게 되었을 문구가 바로 이것이었을 테다. 노동의 결과가 자유로 이어진다는 정문에서의 문구와 달리 아우슈비츠에서의 노동은 영양실조와 혹사, 나아가 가스실에서의 죽음으로 이어졌지만 말이다.

정문 아래를 통과해 수용소 내부로 진입하니, 일자로 뻗은 도로 양쪽으로는 일정한 간격을 두고 붉은 벽돌로 지어진 막사들이 쭉 늘어서있다.

Address

Suzhou

Website

Alerts

Be the first to know and let us send you an email when jhtour_korea posts news and promotions. Your email address will not be used for any other purpose, and you can unsubscribe at any time.

Shortcuts

Share

Category